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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다
  • 13,000원
    • 저자
    • 고정순
    • 출판사
    • 제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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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 : 에세이
쪽수 : 220p
크기 : 140*205mm
출간일 : 2016.05.27

화장품 모델 착용 이미지-S1L3
그림책 『솜바지 아저씨의 솜바지』 『최고 멋진 날』 『슈퍼 고양이』 등으로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고정순 작가가 첫 산문집을 펴냈다. 멋진 삶을 살기 위해선 남보다 뛰어나야 한다고 가르치는 세상 속에서 점점 존재감을 잃어가는 보통의 청춘들에게 건네는 마흔 편의 솔직담백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작가가 오랫동안 살피고 다듬은 문장들은 여느 소설가의 산문 못지않은 깊고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한때 영등포라 불리던 모든 것에게 전하는 안부와 작별의 인사

어찌 보면 『안녕하다』의 주인공은 ‘영등포’라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시인을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듯 작가 고정순을 키운 8할은 영등포라 할 만큼 이 책에서 영등포가 갖는 이미지는 강력하다. 인천 소래포구의 한 오락실 뒷방에서 살다가 서울로 이사 온 그녀의 가족에게 영등포가 “건넨 첫마디는 시끄럽고 냉정”하다. 어린 여자아이의 눈에 비친 영등포는 “돌멩이조차 돌멩이답지 못”한 동네였으며, “대로변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철공소들 사이로 해가 서서히 사라지”는 풍경을 지닌 곳이었다. 그렇지만 영등포는 그녀가 또 다른 세계로 나가기 전 한 시절을 품어준 ‘인큐베이터’ 같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작가의 내면에 영등포는 공간인 동시에 시간으로서 자리한다. “노동과 유흥이 한데 뒤섞여 나뒹굴”던 공간이면서 “어둠이 내리면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것 같”던 시간. 그래서 뭐든지 가능할 것 같은 공간이자 시작하기에도 끝내기에도 괜찮은 시간. 훗날 그녀가 지나간 옛사랑의 기억을 더듬을 때도, 극심한 육체적 고통과 싸울 때도 영등포는 하나의 또렷한 실체로서 존재한다.

이 책은 여느 에세이처럼 단편적인 에피소드나 사유를 나열하는 방식이 아닌, 유달리 호기심 많고 예민한 촉수를 지닌 한 소녀가 어른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연대기적 구성’을 취한다. 1부(때때로, 영등포)와 2부(바람이 어느 쪽에서 불어오든)는 작가가 열 살이 되던 해 처음 만난 영등포에 관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소녀의 눈에 비친 영등포의 첫 이미지는 눈부신 형광이다. 밤이 되면 화려한 네온사인과 사창가의 붉은빛으로 대낮처럼 밝아지는 외로운 형광 섬.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외롭고 고단하며, ‘나’에게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일깨우는 존재들이다. 그러면서 소녀는 예술을 향한 열망을 조금씩 키워 나간다.“우리 집 골목 모퉁이에는 대문이 없는 작은 집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는 몹쓸 병에 걸려 늘 누워 지내는 사내가 살았다. 팔다리가 앙상한 그는 햇빛을 보지 못한 탓인지 병든 흰말처럼 보였다. 나보다 두 살 어린 남동생은 흰말에게 링거 한 병을 사다 주는 심부름을 자주 했고, 그러면 흰말은 냄새 나는 이불 밑에서 종이돈 한 장을 꺼내 쥐여주곤 했다. 전학 온 학교의 아이들은 침을 발라 녹인 설탕 알갱이로 별을 만들고 있었고, 선생들한테는 언제나 고독한 구취가 났다.”
3부(다시, 영등포)에서는 이제 막 화가로 첫발을 뗀 작가의 분투기가 펼쳐진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어둠 속에서 형광안료로 모텔 벽화를 그리거나 그림을 싸들고 출판사를 전전하면서도 그녀는 결코 자신의 ‘꿈’을 놓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마음 놓고 작업할 수 있는 작은 공간 하나를 갖는 것. 그렇게 예술과 밥벌이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사이 그녀에게 육체적인 고통까지 덮쳐온다.
“얼마 전, 극심한 통증과 싸우는 한 작가가 쓴 책을 읽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건강이 조금씩 좋아졌다고 쓰여 있었어요. 나는 통증을 이겨내는 어떤 의학적인 방법을 기대했는데 맥이 딱 풀려버렸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그 책의 내용이 마음에 들어요. 아직 방법이 있다니, 그 방법이 다른 무엇도 아닌 사랑이라니…….”
4부(작고 가난한)는 지금 여기의 이야기다. 영등포를 떠나온 지 오래지만, 작가는 어느 곳에서나 “해를 이고 사는” 작고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함을 깨닫는다.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며 하루의 대부분을 그림책 만드는 일로 보내면서도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려고 애쓴다. 지금 자신이 알고 있는 건 모두 사람으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그녀는 미술 수업을 진행하면서 만난 탈북 청소년들을 통해 “그곳은 힘들고 이곳은 외롭다”는 생의 비밀과 마주하기도 한다.
“문신 기술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 훈이가 자신의 팔에 유성 사인펜으로 그려놓은 무수한 별들의 의미를 그제야 어렴풋하게 알 수 있었다. 별을 보며 국경을 넘은 아이들에게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한 젊은 예술가의 삶과 사랑 그리고 관계에 관한 작고 가난한 기록

뮤지션 하림이 쓴 발문처럼 그녀는 한때 영등포라 불리던 모든 것을 소환한 뒤 하나하나 안부를 확인한다. 그러고는 낮지만 깊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 모두가 지나온 특별한 시공간에 대해, 너무 멀거나 가까웠던 관계에 대해, 실패한 농담과 위태로운 꿈에 대해, 기쁨과 슬픔, 영원과 순간에 대해.

『안녕하다』는 달달한 연애 이야기도, 가슴 아픈 이별 이야기도, 그렇다고 ‘좋아요’를 눌러야만 할 것 같은 ‘페북용 아포리즘’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이 빛나는 이유는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 때문이다. 영등포의 쓸쓸한 풍경을 닮은 글은 읽는 이로 하여금 작고 가난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이 불가해한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과 사유는 생의 언저리에서 보통의 삶을 사는 우리의 자화상을 바라보게 하고, 아파서 외면했던 기억들과 마주하게 한다. 그리고 등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속삭이는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만 개의 슬픔 끝에 단 하나의 기쁨과 희망을 노래한다”고. 작가와 함께 길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오면 아주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인사라도 생각난 듯 나의 지나온 삶을 향해 천천히 손 흔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안녕하다. 그러니 이제 안녕,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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