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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사랑하는 지겨움
  • 13,000원
    • 저자
    • 장수연
    • 출판사
    • Lik-it(라이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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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 : 에세이
쪽수 : 240p
크기 : 128*200mm
출간일 : 2020.02.17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것이 주는 지겨움을 사랑하는 것”

‘Radio, Someone still loves you’
라디오를 아직도 사랑하는 누군가가 바로 이 책을 읽는 당신이길…
_배철수

냉담한 눈빛, 어긋난 사랑 앞에 상처받을 때 어둠을 밝히는 빛은
밖이 아니라 결국 내면의 열정에서 찾아진다.
_한재희(MBC 라디오 피디)

낭만적 입사와 그 이후의 지리멸렬한 일상

첫 책,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로 모성애를 다각적이고 통쾌하게 풀어냈던 MBC 라디오 장수연 피디가 이번엔 일상의 범주에 접어든 직업 세계를 통찰한다.
애호 생활 에세이 브랜드 ‘Lik-it 라이킷’ 다섯 번째 책 《내가 사랑하는 지겨움》은 다양한 음악 매체들이 쏟아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라디오 방송 피디의 낭만과 지리멸렬한 애정을 담았다. 라디오를 들으며 프로듀서의 꿈을 키워왔던 83년생 장수연이 몇 차례 낙방 후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MBC에 합격하던 영광의 순간, 마냥 잘 해내고만 싶었던 신입 사원의 뜨거운 가슴에 첫 균열이 일어나던 순간, 애초에 잘못 파악한 적성이었는지 의심을 품는 순간, 그리고 마침내, 이 정도면 잘하고 있다고 정신 승리의 기술을 터득해내기까지의 잊지 못할 순간순간을 담았다. 나아가 이 책은 한 자유로운 영혼의 삶에 제재를 가하는 회사를 향한 은밀한 복수로서의 사적인 책 읽기와 글쓰기의 결과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딴짓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프로그램으로는 만들 수 없었던 그가 꼭 하고 싶었던 이 이야기들은 지금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나눠야할 담론의 주제를 제공한다.

라디오는 참, 인간의 삶을 닮았다

무언가에 사로잡힌 사람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자신이 몰두하고 있는 것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말하기 때문이다. 장수연 피디는 라디오를 인간의 삶에 비유하기를 즐긴다. 특히 전성기를 누리고 있지 못한 점이 라디오와 인간의 공통점이라고 말한다. 라디오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은 ‘지친 어른처럼 과거의 화양연화를 남몰래 쓰다듬고 있’는 동시에, ‘가난한 청춘처럼 아직 전성기를 기다리는 중’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라디오 생방송 스튜디오의 시계에는 세 종류의 시간이 표시된다. 현재 시각, 프로그램이 시작된 후 지금까지 흐른 시간, 프로그램 종료까지 남은 시간. 장 피디는 이 세 개의 시간이야말로 삶에 대한 강렬한 은유라고 썼다. 지금껏 살아온 시간과 죽음까지 남은 시간, 그리고 오늘 주어진 시간. 오프닝 멘트를 시작할 때 57분이던 시계는 0이 되면서 그날의 프로그램이 끝난다. 그리고 다음 날, 소진해야 하는 숫자로 우리를 또 기다린다. 그는 반복되는 삶의 권태를 이겨내기 위해선 언젠지 모를 마지막을 상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한다.
아이가 출근길에 보채도, 버스 정류장에서 잘생긴 남자를 보아도, 컨디션이 안 좋아 방송을 망칠 것 같아도 매일, 제시간에 기필코 방송을 지켜온 13년 차 베테랑 피디가 퍼 올린 현장감 넘치는 에피소드들은 우리가 간과했던 ‘매일의 힘’을 보여준다. 만족스럽지 못한 방송을 끝내고 자책하다가도, “매일 하는데 어떻게 매일 좋겠나?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이상할 때도, 고약할 때도 있는 게 자연스럽지”라며 더 나은 내일을 다짐한다. 매일 하므로 힘들고, 지겹고, 바닥이 드러나지만, 역시 매일이기에 하루아침에 망하거나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견고한 벽의 벽돌을 부수는
진심 어린 애정의 힘

그렇다고 마냥 선배의 따뜻한 위로만 이어지는 건 아니다. ‘이건 일일 뿐이야’, ‘어차피 직장인일 뿐’이라고 자신을 위로하면서도, 진짜로 그렇게 설득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직장인이지만, 직장인의 마음으로 회사에 다니면 안 되는 사람, 하고 싶은 대로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는 없지만 하고 싶은 게 끊임없이 꼭 있어야 하는 사람, 그 모순된 사람이 바로 라디오 피디이다. 피디뿐 아니라 콘텐츠를 창작하는 크리에이터라면 모두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포기하거나 상대를 탓하지 않는 지속가능한 직장 생활을 위한 번뜩이면서도 유쾌한 아이디어들과 더불어 꾹꾹 눌러 쓴 묵직한 이야기들도 있다. 아무리 애써도 인과관계가 어긋나는 인생의 면모에 대해 그는 자주 생각한다. 앞만 보고 달리다 문뜩 멈춰 서 자신을 살피는 계기를 제공한 암 수술의 경험, 동료 모두에게 생채기를 남긴 파업, 지금도 누군가는 겪고 있을, 조직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겪은 일들도 기록하며,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더 너그러워지겠노라 다짐한다. 지금을 과거의 결과로 보는 대신, 현재를 원인으로 미래를 주체적으로 바꿔 가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는 말에서 잔잔한 울림이 인다.
음악 방송 연출자답게, 가사를 음미하며 듣는 추천곡도 함께 담았다. 안전하고 즐겁기만 한 글쓰기를 지양하고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기고자 했던 고심의 흔적이 엿보인다. 이 역시 방송 제작자답다.
저자는 ‘진정한 프로라면 함께 일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방송만 잘하면 그만’이어야 한다면서도, 동료를 진심으로 좋아할 때의 남다른 마음가짐이 단순히 ‘회사 생활’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을 준다고 한다. 시간과 열정, 때로는 건강까지 갈아 넣어가며 온종일 프로그램을 생각하는 그가 이 ‘허탈한 열심’을 멈추지 못하는 건 결국 라디오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매체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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