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천사 같은 도우미는 필요 없다!”
장애라는 편견 없는 사회를 꿈꾸며 소개하는 27편의 장애 영화 이야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의 통합으로 완성되어 가는 것을 꿈꾸고 소망하고 그것을 문화 예술로 그려내는 것이 페어 아트(pair art)이고 페어 시네마(pair cinema)라고 할 수 있다. 에이블 시네마가 장애인들의 가능성의 문화를 영상에서 탐색 모색 실천하려고 한다면, 페어 시네마는 장애인들만이 아니라 비장애인과 같이 더불어 협력하고 상호보완을 통해 하나의 구성원으로 사회를 더 좋게 만들기 위한 동반자적인 관계성을 모색하는, 남성과 여성의 양성평등이 그러하듯이 공존과 상생을 모색하는 영상 작품을 의미한다. 결국, 모두 공진화할 수 있는 미래의 영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지난 평창 패럴림픽에서는 ‘disability’를 쓰는 대신에 ‘impairment’를 사용하도록 권고했다. ‘disability’가 ‘할 수 없다’는 의미가 있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pair’는 한 쌍, 한 벌의 뜻으로 두 부분이 전체 하나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impairment’는 이 중 짝을 이루는 어느 한 부분이 훼손된, 전체 하나가 이뤄지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impairment’를 쓸 때는 어느 부분이 훼손되었는지 같이 명기하도록 권고되기도 한다. 시각이면 시각, 청각이면 청각, 척수 등을 명기하라는 것인데 이는 전체 능력이 아니라 특정 부위만 손상되었고 그로 인해 일부 능력을 발휘할 수 없을 뿐 나머지 신체와 그에 따른 역량은 다를 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애초에 할 수 없고 능력이 없음을 규정하는 ‘핸디캡’이나 ‘디스어빌리티’와 다르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장애에 관련된 27편의 영화에 관한 리뷰를 담아내었으며, 에이블 시네마, 나아가 페어 시네마의 방향성 모색을 그려내고자 했다.
“이 책의 진정한 출간 의의는 장애 필터를 끼지 않아도 되는 날을 위함이다”
장애인 스스로 쓰는 말 중에도 생각할 게 있다. 예컨대, “나는 장애인이지만…”,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장애가 있지만…”이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장애인이지만 나는 잘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장애인이라는 당신이 더 잘 살아야죠”라고 말할 때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비장애인의 언급이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에 나온다면 더욱 그렇다. “장애인도 열심히 사는데 너는 더 잘살아야지.” 이는 충분히 장애인들이 모멸감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나는 여자이지만”, “흑인이지만”이라는 표현을 지양해야 하는 이유와 같다.
현재 한국장애예술인협회 감사직을 맡고 있으며 장애예술종합전문지 <E美지>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면서 대구대 장애학과 대학원 박사 과정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저자가 27편의 장애 영화를 차분히 리뷰하며 그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전하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책에 담겨 있다.
잘 알려진 국내외 영화뿐만 아니라 세상에 빛을 보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상영의 이유가 되는 영화들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있노라면 영화의 힘이 왜 그토록 위대하다고 할 수 있는지 충분히 느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