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를 〈겨울왕국〉으로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말레피센트〉로 바꾼
‘시네마+페미니즘’의 세계에 초대합니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인어공주 드레스를 찾던 아이들은 〈겨울왕국〉을 기점으로 엘사 여왕의 드레스에 열광하게 되었다. 무엇을 보느냐는 우리의 생각과 욕망, 행동을 결정한다. 영화·드라마·웹툰 속 메시지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힘, 미디어 리터러시가 필요한 이유다.
많은 영화가 세상의 차별을 거울처럼 재현한다. 섹시하고 아름다운 여성, 소심하지만 성실한 아시안, 가난하지만 흥이 넘치는 흑인. ‘비주류’의 이미지는 납작하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다양하게 그려지는 것은 주로 남성 캐릭터의 서사다. 이들은 자기만의 시간을 살고, 모험을 하고, 성장을 하고, 여성을 트로피로 얻는다.
여성 캐릭터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 속 오로라 공주처럼 탑 안에 잠든 채 왕자가 가시덤불을 헤치고 구해 줄 때까지 멈춰진 시간 속에 갇혀 있다. 디즈니의 〈말레피센트〉 시리즈는 이런 상상력을 비판하며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다시 쓴다. 오로라와 그에게 저주를 내린 마녀 말레피센트의 이야기를 조명하는 것이다. 이렇게 여성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고, 토론하고, 만들려는 시도가 바로 ‘시네페미니즘’이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성평등 교육을 연구하는 교사 모임 ‘아웃박스’ 소속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10대들을 시네페미니즘의 세계로 안내한다. 나다운 삶을 응원하고 낯선 이들과 연결하는 보석 같은 영화 17편에서 평등과 다양성, 평화와 연대의 가치를 읽어 낸다. 편견이 상식으로, 혐오가 놀이로 통용되는 현실에 맞서 자신의 감정과 선택을 믿고 나와 다른 존재를 환대하는 길을 보여 준다. 손희정 영화평론가의 해설은 시네페미니즘의 개념과 역사, 여러 입장을 책 속 영화들과 엮어 구체적으로 알려 준다.
나다운 삶을 응원하고
낯선 이들과 연결하는
보석 같은 영화 17편
잘난 것도 없고 숨겨진 능력도 없어 주인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청소년에게 이 책은 〈벌새〉를 소개한다. 그동안 영화의 사각지대였던 평범한 소녀의 시간과 관계를 비춤으로써, 힘든 사춘기와 학교생활을 견디고 있는 10대라면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거식증에 찬성하는 ‘프로아나’와 꾸밈 노동을 거부하는 ‘탈코르셋 운동’이 공존하는 청소년 사회에는 개개인의 겉모습이 아닌 사회의 시선이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아이 필 프리티〉)를 전한다. 보통의 남자 청소년과 달리 과격한 몸 놀이를 즐기지 않거나 여자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친구에게 게이나 트랜스젠더냐고 묻는 교실이 왜 성별 이분법적이고 폭력적인지, 퀴어를 일컫는 말을 욕처럼 쓰는 행동이 왜 혐오표현이며 누군가의 존재를 지우는 말인지 〈톰보이〉와 〈윤희에게〉로 설명한다.
나와 너의 연결이 끊어지는 순간 차별은 자리를 잡는다. 인간 종 안에서 차별이 사라지더라도 세상을 둘로 나누고 어느 한쪽이 다른 쪽보다 우월하다는 사고방식이 없어지지 않는 한 평화는 오지 않는다. 책은 이 메시지를 담은 영화(〈옥자〉 〈모노노케 히메〉)를 통해 ‘페미니즘’이란 차이에 우열을 부여하려는 생각을 바꾸는 운동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남자/여자, 인간/동물, 문명/자연, 정상/비정상 등의 이분법적 경계를 넘어, 서로를 존중하며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는 운동임을 분명히 한다.
이미 젠더 감수성이 돋은 독자에게는 성차별을 딛고 빛나는 성취를 이룬 과학자와 대법관 이야기(〈히든 피겨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를 추천한다. 끈질긴 노력과 연대의 필요성을 알리고, 차별을 재생산하는 사회적 구조를 꼼꼼히 짚는다. 반전과 평화라는 위대한 가치를 나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 인권 운동가(〈김복동〉)의 삶도 담았다. 차별에 저항하려는 작은 노력이 위대한 역사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건네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