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책에서 펴낸 설하한의 『사랑하는 일이 인간의 일이라면』은 2019년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의 첫 시집이다. 설하한 시인은 등단 당시 “큰 스케일과 자신만의 문장을 가진” 시인으로, “신화적 상상력을 육화해 시의 소재로 삼고, 떠돎과 회귀라는 서사를 시의 구조에 정착할 줄 안다”는 평을 받으며 등장했다. 원초적인 소재라고도 할 수 있을 법한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설하한 시인은 시 편편을 넘어서 시집 전반의 구조로 확장하여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새의 죽음으로 나타나는 상실의 징후와 일일이 기록되지 않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 시집 전반에 걸쳐 등장한다.
총 3부로 이루어진 시집의 목차와 각 부를 갈음하는 페이지를 펼쳐 본 독자들은 조금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다. 설하한 시인은 1부는 깨끗한 백지, 2부는 고야의 <양 머리가 있는 정물화>, 3부는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Agnus dei>를 각각 싣고 그림의 제목을 부의 제목으로 올렸다. 백지에서 도살된 양의 이미지, 그리고 희생양의 이미지로 각 부가 진행된다. 준비 없이 마주한 죽음에서, 죽음의 샅샅한 해부로, 이윽고 죽음에 대한 주체 나름의 이해로 옮겨간다고 평할 수도 있겠다. 물론 부의 구성과 무관하게 독자 나름대로 시인의 시 배치를 따라 읽어가는 것도 읽기의 즐거움이 되리라.
천국이 있다고 하자 새가 천국에서 당신을 기다린다고 하자
당신도 천국에 간다고 하자 당신은 새를 만나 미안하고 기뻐서 엉엉 운다
― 「새 이야기」 부분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 즉 죽음은 반드시 닥쳐올 미래의 사실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라고 하자”)이므로 부러 미리 걱정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도, 설하한의 화자들은 상실이 안배할 슬픔을 당겨 느낀다.
그러나 세계는 원래 오류투성이라고
나는 쉽게 결론 내리곤 했다
죽은 동물이 놓인
접시 앞에서
단지 그럴 뿐이라고
― 「빛과 양식」 부분
설하한 시인의 상실로 인한 슬픔에 대한 예감이 특별한 까닭은, 시인이 벌어진 상실 혹은 벌어질 상실에 대해 시로 쓰고 있다는 점을 문면에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시집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새의 죽음이라는 사건에 대한 화자의 반응은 2부에서 단언처럼 제시되었다가 3부에 이르러서는 쓰기의 곤혹스러움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불쑥불쑥 등장한다. 시인은 왜 슬픔을 쓰는가라는 질문에 설하한 시인은 정답을 말하기보다 고투를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한 듯하다. 우리가 살면서 갑자기 들이닥친 슬픔을 언어화할 때 느끼는 곤혹스러움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해설」에서 임지훈 문학평론가는 설하한 시인이 형상화한 슬픔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것을 단지 슬픔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슬픔이되, 반복되는 아름다움이며, 모든 것을 깨뜨리기 위해 쌓여가는 실패의 흔적이다.”
우리에게 슬픔을 느낄 능력이 여전히 남아 있기를 바라며, 설하한 시인과 함께 애도의 예감을 거닐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