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은 오로라 예보가 꽤 활발한 날이기도 해서 나는 밤 12시가 되자마자 설인처럼 온몸을 단단히 무장한 채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어 젖혔다.
문 앞에는 새벽 풍경이 미동도 없이 놓여 있었다.
걸음을 떼자 갑자기 날카로운 한기가 코끝을 쨍하고 내리쳤다.
한 걸음 한 걸음. 서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놀랍게도 거리에는 내 발소리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진공상태의 어딘가를 걷고 있는 것만 같았다.
차도 사람도 집도 모두 잠들어버린 진짜 새벽이란 이런 것일까.
난생처음 경험하는 이런 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시끄러운 곳에서 살아왔으면 이렇게 침묵을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렇게 한동안 도돌이표처럼 따라오는 내 발소리에만 귀를 기울인 채 길을 걸었다.
모든 감각들이 예민하고 날카로워지는 것 같았다.
문득 낮에 보았던 마을의 산을 올려다보았다.
신기하게도 낮 동안 그리 훤하던 설산이 이제는 밤하늘보다도 더 까맣게 어두워져 있었다.
그 컴컴한 산을 보자니 왠지 지금껏 내가 익히 알고 있다고 믿었던 하얀 산의 모습만이 산의 본질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산은 산대로 밤의 산, 낮의 산, 두 개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내가 낮에 눈을 뜨고 살아서 산을 내 마음대로 하얗게 외워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57-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