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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아림의 조각들
  • 16,800원
    • 저자
    • 임지은
    • 출판사
    • 안온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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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 : 에세이
쪽수 : 252p
크기 : 120*188mm
출간일 : 2023.05.24

악세사리 상품 이미지-S1L3
깊은 헤아림으로 가능한 쓰기의 조각들
버티고 견디어 마침내 드러나는 사랑의 가능성

“단정한 문장과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연한 마음을 헤아려준다.” - 최진영(소설가)

첫 산문집 《연중무휴의 사랑》에서의 꿋꿋한 문장과 진중한 사유로 에세이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임지은 작가의 두 번째 산문집 《헤아림의 조각들》이 안온북스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책에서 임지은은 한층 더 깊고 너른 헤아림을 보여준다. 임지은의 헤아림은 오래 바라봄이다. 임지은 오래 바라보는 자가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사태의 이면과 어둠마저도 끌어안는다. 사랑하는 할머니와 유년 시절의 기억, 잠시 스쳐 지나간 타인과 한 꼭지 뉴스 기사까지 임지은의 헤아림은 연중무휴, 그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고는 종래 자기 자신의 끝까지 헤아려 살핀다. 거기에 고여 있는 위선과 거짓마저 까발린다. 그리하여 임지은의 헤아림은 곧 버팀이다. 들추고 살피는 과정을 버티고 견디어 마침내 발견하는 건 사랑일 수밖에 없다. 완성된 사랑이 아닌 사랑이 될 가능성의 조각들. 우리 안에 숨어 빛나는 헤아림의 조각들이 임지은의 문장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다.

■ 당신을 헤아리면 그제야

“그건 윤리적 가르침이라기보다는 하지 말아야 할 것 혹은 해야 할 것에 대해 내 가족이 어린 내게 길러준 습관에 가깝다. 그리고 요즘 같은 날엔 그런 습관이 내가 골몰하는 어떤 윤리보다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 윤리가 여전히 지하철을 좋아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15쪽

우선 헤아릴 대상은 가족이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한 유년이다. 가족이 머물었던 공간이고 부모가 애쓰던 일터다. 임지은에게 그곳은 서울이며, 서울의 발밑에는 오랫동안 지하철이라는 게 있었다. 작가는 가판대가 있던 벽을 기억한다. 지하철을 터전 삼아 일하던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한다. 오래 기억하고 기억에 기억을 덧대는 것은 헤아림과 다른 말이 아니다. 지금은 병상에 있는 할머니를 아프게 한 철없던 시절의 기억은 지금 작가의 심장을 저리게 하고 그날의 기억은 얼마 전 할머니에게 선물한 드립백 커피로 조각을 맞춘다. 그로부터 우리는 늙음과 돌봄을 그리고 죽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된다.
가까운 곁에서부터 시작한 헤아림은 이제 타인에게로 향한다. 사춘기 시절을 함께 보냈으나 이제는 소원해진 친구, 만난 지 오래되어 이제는 예전의 열정을 잊은 듯해 보이는 동거인, 조금은 불편할 정도로 조언과 격려를 일삼는 지인까지 모두 타인이며, 헤아림의 대상이다. 가끔 졸업앨범을 보면서 할 생각의 조각을 그러모아 작가는 지금 여기에서 관계에 대한 이유와 방식을 고민하게 한다. 열렬한 사랑 이후 지긋하고 단단한 신뢰를 형성한 작가의 이야기는 사랑의 이해를 구하게 한다. 격려와 조언을 불편해하는 세태를 꼬집어 진심과 정성이 사라지는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 이렇듯 임지은의 글을 읽으면 우리는 거기에 있는 당신을 생각하게 된다. 그 거리감을 섬세하게 헤아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나를 헤아리며 마침내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주고받는 일이 내게 언제나 가장 큰 의미라는 사실은 어떤 식으로든 나를 괴롭혀왔다. 여전히 타인의 기쁨이 되어야만 하는 슬픔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나의 충동과 버릇은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오염시키고, 타인을 너무 헤아리다 못해 나를 잃어버릴 것 같으니까.” -131쪽

끊임없이 주변부를 탐색하던 헤아림은 마침내 자기 자신에게로 발걸음을 옮긴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칭하면서도 모순적인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는 성향과 습관을 고백한다. 모든 인간은 모순적이라 말하는 대신, 자신의 모순을 폭로하는 식이다. SNS에 ‘좋아요’를 받기 위해 올린 서정적이고 교훈적인 글에 예상과 사뭇 다른 댓글이 달리자 그에 대한 필요 이상의 분노를 일으키는 자신의 모습을 작가는 가감 없이 쓴다. 고집을 부리는 자신의 낯선 목소리를 녹음하고 다시 듣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임지은의 자기 헤아림은 이렇듯 가혹한 측면이 있다. 타인을 헤아릴 때는 충분히 이해하려 들면서도 자신을 헤아릴 때는 어떻게든 들춰내려 한다. 그렇게 해야 버틸 수 있다는 듯이. 그렇게 하는 것이 내 글쓰기의 전부라는 듯이.
이처럼 에세이스트 임지은은 자신에게 혹독하고 타인에게 관대하다. 담담한 자기 고백은 차라리 폭로에 가깝지만, 타인에 대한 판단과 정의는 머뭇거리는 자세를 취한다. 당신의 감정과 사정을 헤아리고 그때 그럴 수밖에 없었던 당신의 감정과 사정을 헤아린다. 조언과 공감 전에 깊은 헤아림으로써 읽는 이를 위로한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되, 충분히 겸허하게 말한다. 가령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한때의 목표를 덤덤한 목소리로 회고하지만 타인의 현재와 그 경험이 맞는 지점에서는 한없이 조심스러워한다. 작가로서 자신의 포즈와 욕망을 다소 위악적으로 풀어내지만, 동의할 수 없는 타인의 의견에 동일하기보다는 동등하기를 택한다.
만약 이 책에서 마주한 당신이 스스로를 혐오한다면, 임지은은 오래도록 알아온 당신의 근사함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함께 고민할 것이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볼 미래에 대해서. 이 모든 게 가능한 것은 헤아리면 헤아릴수록 도리 없이 가중되는 사유의 고달픔과 쓰기의 지난함을 작가가 버티고 견뎠기 때문이다. 헤아리고 헤아려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작가 임지은의 의해 《헤아림의 조각들》은 우리 풍경의 일부가 되었고, 우리는 그 부분을 바라보는 걸 좋아하게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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