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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노를 치며 생각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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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
    • 오재형
    •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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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 : 에세이
쪽수 : 272p
크기 : 128*188mm
출간일 : 2021.06.22


서른두 살 겨울, 홀로 떠난 제주 여행. 시시한 바다를 따분히 바라보고 재미없는 책을 읽다가, 연고도 없는 곳에서 대출받아 치킨집을 차린 친구를 만나 술을 마셨다. 친구와 작별하고 공항 근처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 4인실 도미토리 침대에서 누워 다짐했다. ‘아무래도 피아니스트가 되어야겠어.’ 장기하와 얼굴들의 “오래된 마음이 숨을 쉬네”라는 노랫말처럼, 스무 살 무렵 취미 삼아 배운 피아노가 불현듯 숨 쉬기 시작한 것이다.

성인이 되어 뒤늦게 좋아하게 된 피아노를 직업으로 삼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작가는 취미와 직업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시선으로 아마추어와 전문가의 자격을 두고 갈등하는 모습을 솔직하게 풀어놓는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에 알맞은 시기가 있고, 그것을 직업으로 택하기에는 일정한 경로가 정해져 있다는 ‘생애주기 이데올로기 사회’에 균열을 내고 싶은 소심한 욕망 한 스푼도 함께.

작가는 자신이 20대에 그린 청사진 중 실현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정규 코스를 밟은 건 은퇴한 미술뿐이다. 등단한 적 없지만 책을 냈고,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영화를 찍고 피아노를 연주해 관객을 만난다. 그런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좋아하는 일을 묵묵히 좇다 보면 누군가는 꼭 손을 잡아 준다는 것. 이 책 역시 그렇게 쓰였다. 마지막 장을 덮을 무렵, 당신의 ‘오래된 마음’이 다시 숨을 쉬기를.

음대에 출몰하는 미대생
칸에 입성한(?) 영화감독이 되다

성인이 되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 피아노를 배운 건 (많은 이가 그러했듯) 아홉 살 무렵. 너무 ‘노잼’이라 바이엘도 떼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큰일을 앞두고는 뭐든 재밌어 보이는 걸까? 입시를 앞두고 누나의 피아노 연주가 감미롭게 들렸고, 대학 입학과 동시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미대에 입학했지만 피아노가 너무 좋아 음대에서 살았다. 피아노과 신입생이 학과 선배인 줄 알고 90도 인사를 할 정도로.
군대 유격 훈련장에서 등으로 바닥을 쓸면서도 피아노만 생각했고, 오직 피아노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교회 성가대에 들어갔다. 그런데 웬일일까, 전역과 동시에 그 마음이 싸그리 사라졌다. 다시 본업인 미술로 돌아와 학교를 졸업하고 세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서른 즈음에는 영화에 빠져들었다. 사회 이슈에 관심을 두고 매년 방문하던 제주 강정마을에서 영상 워크숍에 참가한 게 계기였다. 단편영화를 다수 연출했고, 국내 몇몇 영화제에 초정받아 ‘감독님’ 소리를 듣게 되었다. 해외 영화제에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고, ‘단편영화(short film)’를 자꾸 ‘반바지 영화’로 옮기는 구글 번역기를 붙잡고 끝끝내 칸 영화제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하여 초청장을 따냈다. 물론 봉준호급이나 박찬욱급은 아니지만, “멸치도 생선”이다.

“오래된 마음이 숨을 쉬네”
서른두 살, 피아니스트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다

갤러리보다 스크린 앞에 서는 일이 잦아질 무렵, 전시 제의를 받는다. 오랫동안 미술 작업을 하지 않았던 터라 고민하다가 덜컥 수락한다. 화가로서의 은퇴전을 열겠다는 조건으로. 그림 그리기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열정이 사라졌지만, 화가는 유년 시절부터 품어온 꿈이기에 ‘끝’이라는 이벤트를 연 것이다.
머리를 식힐 겸 홀로 제주 여행길에 올랐다. 시시한 겨울 바다를 따분히 바라보고, 재미없는 책을 읽다가, 연고도 없는 제주도에서 대출받아 치킨집 차린 친구를 만나 술 한잔 기울였다. 친구와 작별하고 게스트하우스 4인실 도미토리 침대에 누워 다짐했다. ‘아무래도 피아니스트가 되어야겠어.’ 당시 서른두 살의 나이었다.
정말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었다. “오래된 마음이 숨을 쉬네”라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랫말처럼 스무 살 때 배운, 당시에는 정말 너무 좋아서 하루종일 연습하던 피아노가 떠오른 것이다. 피아노와 영상, 영상과 피아노.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순수예술 세계에서 다짐은 다음의 사고회로를 거쳐 현실이 된다. ①하고 싶은 걸 한다 ②재미없으면 손절한다 ③망할 것도 없다.

“그냥 피아노 치는 게 좋아서”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 그 틈에서 보이는 것들

서울시 등촌동의 시한부 전시 공간 ‘일년만 미슬관’에서 작가는 <블라인드 필름>이라는 제목으로 영상 상영과 피아노 연주를 결합한 공연을 처음 시도한다. 관객의 흥미를 확인하고 이 방식에 확신을 품는다. 이런저런 무대와 극장, 갤러리를 오가며 공연하던 작가에게 뜻밖의 은인이 나타난다. <더 하우스 콘서트>의 기획자 박창수 피아니스트로부터 공연을 제안받은 것이다. <더 하우스 콘서트>는 조성진과 손열음 등 내로라하는 찐(?) 피아니스트들이 오르는 무대. 그렇게 그는 조성진과 같은 피아노 건반을 누르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혼란스럽다. ‘피아노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무대에 오르는 나는 피아니스트인가 아닌가?’ 작가는 취미와 직업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시선으로 아마추어와 전문가의 자격을 두고 갈등하는 모습을 솔직하게 풀어놓는다.

“그냥 피아노 치는 게 좋아서.” 작업의 의미를 캐묻는 공격적인 질문에 ‘단지 좋아서’라고 대답하는 것은 왠지 아마추어 같아 보인다. 하지만 내 진심이다. 이어서 속내를 더 꺼낸다. “내가 돋보이고 싶어서요.” _본문에서

단지 좋아서, 나아가 ‘내가 돋보이고 싶어서’ 연주한다. 예술 작업으로 돈을 엄청나게 버는 것도 아니고 어마어마한 명예를 누리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가장 우선시할 건 내 행복이고 즐거움이다. 한 시간 넘게 연습하면 겨우 악보 두 마디 정도를 연주하는 미술가의 속도로 피아노를 친다. 스트레스가 재미를 추월하지 않도록 경계한다. 연습을 반복해도 안 되면, 정중히 이야기하면 된다. “선생님, 저는 이제 이 연습이 좀 지겹습니다. 안 되는 것은 알지만, 지나가겠습니다. 이제 좀 다른 것을 하고 싶습니다.”
작가는 자신이 20대에 그린 청사진 중 실현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정규 코스를 밟은 건 은퇴한 미술뿐이다. 등단한 적 없지만 책을 냈고,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영화를 찍고 피아노를 연주해 관객을 만난다. 그런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좋아하는 일을 묵묵히 좇다 보면 누군가는 꼭 손을 잡아 준다는 것. 이 책 역시 그렇게 쓰였다. 마지막 장을 덮을 무렵, 당신의 ‘오래된 마음’이 숨 쉬길 바란다. 그것이 피아노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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