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책으로 자신을 지키는 사람의 이야기다.
김예림은 남루한 날에 떠올릴 남루하지 않은 이야기를 모은다.
과거의 여자들에게서 건져 올린 말과 글을 어젯밤 꿈처럼
기억하고 옮겨 적는다. 지난 역사 속 여자들의 웃음과 눈물이
자신에게 자국으로 남기를 바라서다.”
- 이슬아 작가 추천
만 스무 살의 김예림은 스물두 살이 되기까지 2년 동안 자신이 선 자리에서 바라보는 페미니즘을, 세상을, 21세기를, 스무 편의 글로 기록했다. 대학에 가지 않은 청년으로서, 연고도 없는 비수도권 지역에 혼자 살며 일을 시작한 여성으로서, 김예림은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시작한 페미니즘 공부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예림은 할 말은 많지만 도무지 입술이 움직여지지 않는 이들에게 자신이 읽은 스무 권의 책을 소개한다. 그가 책 속에서 만난 과거 여자들의 목소리는 현재에 만나는 바로 곁의 여자들의 목소리와 겹치고 포개진다. 그리고 저절로 입술을 떼고 말문을 열게 한다. 김예림은 이 놀라운 경험을 함께하자고 청한다. 그리고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이토록 멋진 날이 왔다’고 외칠 수 있기를 함께 희망하자며 팔을 끌어당긴다.
페미니즘이 뭐야?
김예림이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단순했다. 누군가 “페미니즘이 뭐야?”라고 물을 때 대꾸할 나름의 답을 찾고 싶었다. 여성우월주의니, 여자 일베니 하면서 페미니즘을 조롱하는 일이 흔했지만 김예림은 궁금했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건 꼭 페미니즘뿐만이 아니었다. 여성으로서 스스로를 부정하는 상황을 겪는 순간마다 과연 어찌해야 옳은지 알고 싶었다. 이를 테면 “여자애니까 다리를 오므려야지!” 같은 말을 듣는 순간, 햇볕 아래서 일하다 얼굴이 그을렸는데 누군가 자꾸만 “왜 이렇게 시꺼멓게 탔어?”라고 묻는 순간에는 어찌 해야 좋단 말인가. 모르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즐거운 섹스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어쩌다 임신을 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누군가 함부로 나를 만진 기억이 하루가 지나도 떨쳐지지 않을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그래서 김예림은 더 공부하고 싶었다.
만 스무 살의 김예림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충북 옥천에 집을 구해 살며 낮에는 잡지사 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밤 시간과 휴일을 이용해 공부해야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주 작은 페미니즘학교 탱자’라는 곳이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곳이 김예림의 페미니즘 교실이 되었다.
탱자에서는 매주 책을 정해 읽고, 한 달에 한 번씩 에세이를 썼다. 엄마의 가사노동, 몸에 남은 브래지어 자국, 직장에서 겪은 일, 꾸밈노동 등이 글감이 되었다. 19세기 프랑스에서 일어난 여성의 참정권 운동부터 제2물결 페미니즘까지, 여성의 가사노동부터 육식의 성정치까지, 다양한 앎의 파도를 오르내리며 1년을 보냈다. 퇴근 후 자기만의 방으로 돌아와 책장을 넘기다 보면 아침 해가 떠오르는 날이 잦았다.
내가 선 자리에서 페미니즘 이어 말하기
이 책에 모은 글들은 그런 날들의 기록이다. 대학에 가지 않은, 비수도권에 사는, 여성 청년 노동자로서 김예림은 자기가 선 자리에서 바라보는 페미니즘을, 세상을, 21세기를 기록했다. 그 글들에는 페미니즘 저서들을 통해 생각한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이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김예림이 책 속에서 만난 과거 여자들의 목소리는 현재에서 만나는 바로 곁의 여자들의 목소리와 겹치고 포개진다. ‘앎’의 이야기가 절반, ‘삶’의 이야기가 절반을 이룬다. 김예림의 ‘앎’은 삶의 연료가 된다. 다시 ‘삶’의 시간은 앎을 해석하는 재료가 된다.
시대는 과연 변하고 있을까. 세상은 과연 나아지고 있을까. 어떤 면에서 나아지는 것 같아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변화는 무척 더디고 때로는 뒤로 후퇴하는 듯도 하다. 김예림은 너무 늦지 않게 외치고 싶은 말이 있다. 21세기가 다 가기 전에 새 시대에 꼭 어울리는 언어로 이렇게 외칠 날을 고대한다. “이 멋진 날이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왔구나!” 하고. 그날이 언젠가 오리라는 믿음으로 김예림은 계속 공부한다. 앎을 그리고 삶을.
김예림이 소개하는 스무 권의 책
1. 『제2의 성』, 시몬 드 보부아르
2. 『여성의 권리 옹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3.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4.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글로리아 스타이넘
5. 『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6. 『맨박스』, 토니 포터
7. 『아내 가뭄』, 애너벨 크랩
8. 『성의 변증법』,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9. 『육식의 성정치』, 캐럴 제이 애덤스
10.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나오미 울프
11. 『젠더 무법자』, 케이트 본스타인
12. 『거부당한 몸』, 수전 웬델
13. 『일탈』, 게일 루빈
14. 『시스터 아웃사이더』, 오드리 로드
15.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16. 『페미니즘 위대한 역사』, 조앤 스콧
17.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 마리아 미즈, 베로니카 벤홀트-톰젠
18. 『기록되지 않은 노동』,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
19. 『하나이지 않은 성』, 뤼스 이리가레
20. 『페미니즘 탐구생활』, 게일 피트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