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없는 제목』에서 시인은 시를 언어 차원을 넘어 문자로 ‘맥박’처럼 감각하게 합니다. 다시 쓰고 풀어 쓰고 설명하고 지시하고 여럿-다중성과 행위성을 감각하게 하며 접힘과 펼쳐짐이라는 시학을 넌지시 제시함으로써 시인은 텍스트를 제자리인 듯 그럼에도 끊임없이 옮겨놓습니다. 그 섬세하지만 볼록한 기운을 독자들이 느끼도록 합니다.
시라는 공간
문자라는 맥박
봄날의 책에서 김뉘연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 출간되었다. 김뉘연 시인은 오랫동안 양질의 도서를 기획하고 출판하는 편집자이며, 시집 모눈 지우개와 소설 부분을 쓴 작가일 뿐 아니라, 재료-언어로서 텍스트를 모색하고 사유하며, <문학적으로 걷기> <수사학 : 장식과 여담> <마침> 《방》 등 다채로운 전시 및 퍼포먼스 프로젝트를 협업해온 예술가이다. “태어나고 살아 있는 진행형의 말”(이수명 시인)을 숙고해온 시인은 전작들을 통해 “마치 기하학자가 사물을 보듯 언어를 바라”(강보원 시인·평론가)보며, “결과로서의 예술이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예술에 대한 끈질긴 사유”(최가은 평론가)를 보여주어왔다.
신작 문서 없는 제목에서 김뉘연은 시를 언어 차원을 넘어 문자로 ‘맥박’처럼 감각하게 한다. 맥박이라는 표현은, 단어 하나하나 그리고 시집 전반에서 짜인 구조를 통해서 그 생동과 물질성을 몸으로 체험하게 한다는 함의를 품는다. 다시 쓰고 풀어 쓰고 설명하고 지시하고 여럿-다중성과 행위성을 감각하게 하며 접힘과 펼쳐짐이라는 시학을 넌지시 제시함으로써 시인은 텍스트를 제자리인 듯 그럼에도 끊임없이 도각도각 옮겨놓는다. 그 섬세하지만 볼록한 기운을 독자들이 느끼도록 한다.
아울러 눈여겨봐야 할 건, 이 시집의 물성 그 자체이다. 「문서 없는 제목의 사본」은 시들이 처음 놓여 있었던 그 공간을 지시한다. 부록인 「무언가이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의 찰나」는 수록된 시편들에 대한 번역가이자 작가인 이계성과 인공지능인 GPT-3의 협업이며 보너스 트랙이다. 강보원 평론가의 해설인 「타국에서 펼쳐 든 사전」은 김뉘연의 시편들에 대한 찬찬하고 사려 깊은 징검다리이다. 표지는 윤향로 작가의 작품인〈Tagging—P〉을 특별히 이 시집의 판형에 맞춤하게 다시 작업한 새로운 결과물이다. 이 시집의 구성요소 하나하나는 독자에게 책을 골똘히 바라보며 한 번 더 보고 만지고 들추게 한다.
물질과 존재를
거듭 살피는 글쓰기
김뉘연의 시를 읽으면 종이 위의 텍스트가 열린 공간처럼 느껴지곤 하는데, 낱낱의 말들은 조금씩 변형되고, 말들의 앞뒤와 위아래 간격은 넓어지거나 줄어들기도 하며, 이전 시와 다음 시는 관계 맺으며 있다. 형식과 내용은 자주 상관된다. 이를테면 한 사람이라는 제목의 시는 하나이고, 두 사람이라는 제목의 시는 둘, 세 사람이라는 제목의 시는 셋으로 있다. “제목을 한 사람이라고 지어 두었다고 해서 한 사람이라는 글이 한 편이라는 것이 우습다”라고 시인은 표현하지만 그는 그 “공교로움”(「두 사람」)을 지속하는데, 하나이고 둘이고 셋이고 여럿인 사람들에 대한 생각과 진술이 조각조각 펼쳐질 때, 이윽고 「세 사람」에서 시옷 셋이 들어간 “셌”과 “쎗”을 떠올릴 때 그 형식과 내용의 중첩은 기이한 효과를 확산한다. 시가 세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닌, 시는 정말 세 사람 그 자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공원에 연.
날림.
공원에 돌.
주움.
(…)
종이접기
종이를 날리지 않음.
그만 걷기로 정함.
마침표 열한 개
괄호 없음
— 「문단락」 부분
그러한 물질성은 김뉘연 시의 특징이다. 「문단락」의 화자는 산책하며 보고 생각하고 있다. 절제된 문장으로 이루어진 상황 나열 이후, 마지막에 “마침표 열한 개 / 괄호 없음”이 첨언된다. 이는 시 안의 문장부호를 셈하는 자기지시적인 문장인데, 그럼으로써 순간 우리의 시선은 산책 공간이 아니라 종이와 문자의 물성 자체에 붙들리게 된다. 희한한 건 그와 동시에 언급된 마침표의 물성도 도드라지게 느껴진다는 점인데, 흡사 “연”이나 “돌” 같은 어떤 사물처럼 감각하게 되는 것이다. 시인의 시를 읽으며 우리는 계속 시-문자라는 존재와 그것이 지시하는 상황의 안팎을 오고가는 듯하다. 더 나아가 시편들은 디지털 글쓰기의 존재 및 물질이자 조건을 살핀다. 「새 문서」 「사본 만들기」 「이름 바꾸기」 「실행 취소」라는 시편들의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 김뉘연은 워드프로세서라는 장치, 그 안의 문자들을 클릭하면 더 드러나거나 덜 드러나는, 펼쳐지거나 접히는 것 자체를 시에 접목시키며, 지금의 글쓰기라는 수행성을 사유한다.
기계의 마음이 인간의 마음과 맺는 관계
광활한 안팎의 마음
그렇다면 “건조하고, 덜그럭거리며, 사전의 화살표를 따라 이동하고, 단어가 가진 소리의 유사성을 따라 미끄러지며, 문자에 새겨진 언어의 분절성을 따라 나뉘고 대체되는 단어들”(해설·강보원 평론가)로 이루어진, 존재와 물질을 주로 고스란히 드러내는 문서 없는 제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 시집의 화자이자 주체를 어떻게 상정해야 할까. 작가이자 번역가인 인간 이계성과 인공지능 GPT-3가 협업한 문장들이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넌지시 드러내듯, 이 시집의 주체는 언뜻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듯하다. 하지만 또한 건조한 문체 속에서도, 김뉘연의 시는 감지하고 반응하는 인간으로서의 마음, 그리고 현실과 일상에도 가닿는데, 그것은 인간이므로 인간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그 조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럴 때 김뉘연의 시는 기계와 인간의 마음을 다 포함하며 아우른다. 경계 지음과 경계 없음을 소화하려 노력하면서, 굳이 주인이 되려 하지는 않는 품 넓은 광활한 마음이 시집에는 있다. 해설에서 적시되었듯 “‘나’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고, 맥락상 ‘나’가 나올 법한 자리가 대개 ‘누구’라는 단어로 대체되어” 있다는 사실이 하나의 근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강보원 평론가는 이에 대해 “대체 가능한 것에 대한 사랑”이라고 형상화했다. 사랑은 흔히 대체 불가능함과 함께 나란할 법하지만, 그것을 넘어선 어떤 기이하지만 그럼에도 현실적인 사랑에는 드넓은 드나듦의 태도가 있다는 것이다. 그 너르고 무연한 사랑이 이 시집에는 있으며, 좀 더 긍정하자면 그것은 아마 인간의 시 언어 그 자체일 듯도 하다. 시집-공간은 그 무한한 안팎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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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된 부록 「무언가이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의 찰나」는 이계성이 시집에 수록된 김뉘연의 시를 발췌하고 영어로 번역해 GPT-3에게 제공한 다음, GPT-3가 이어 쓴 글을 편집하고 한국어로 번역한 글이다. 앨범의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된 리믹스와도 같은 이 글은 픽션과 비평을 오가며 시작법을 추론하거나 시집의 방향을 가늠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제목에 다다른다.
이 책의 표지는〈Tagging—P〉(종이에 오프셋, 20.5×45.1cm, 2023)이며, 윤향로의 개인전 《Tagging》(2022)에서 발표된 대형 회화 〈Tagging—H〉(캔버스에 잉크젯, 아크릴릭, 300×500cm, 2022)와 연계된 작품이다. 『문서 없는 제목』이 문서 작성용 프로그램의 안팎에서 시의 형식을 확장하듯, 윤향로의 작품은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주요 도구로 삼아 회화의 개념을 확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