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동안 삶을 조금씩 잃어버리는 이상한 시절
우리는 좀 더 가까워지고 있어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서 물러서야 하는 바로 그 순간에조차
이 책은 사람들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다.”
_리베카 솔닛
팬데믹의 정점을 지나는 한 도시에 바치는
애틋하고 심원한 시선의 산문과 사진들
경험한 적 없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별빛이 떠난 거리》는 코로나의 상처가 가장 큰 도시 뉴욕에서 사태가 시작된 후 백 일까지의 모습을 담았다. 올리버 색스의 연인이자 〈뉴욕타임스〉의 단골 기고 작가로 알려진 빌 헤이스는 팬데믹이 시작되고 정점을 향하는 동안 거리로 나와 우리 삶에 닥친 낯선 풍경을 실시간으로 포착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번잡한 장소가 한순간에 텅 빈 거리가 되어버린 놀라운 광경을 자기 집 창문으로 내다보며, 아주 가끔 이 유령 도시를 질주하는 차들에 환호를 보내다가도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절멸하는 상상에 몸서리친다.
그러나 작가는 삶이 거의 중단되어버렸는데도 오히려 이를 새로운 우정과 연대의 기회로 삼으려는 사람들을 발견해낸다. 독자들이 길거리에 선 채 큰 소리로 책을 주문해야 하는 서점, 테이크아웃 전문점으로 바뀐 뒤 주인과 손님이 긴 바를 가운데 두고 한 잔 술을 나누는 동네 식당 같은 곳에서 또 다른 삶의 양식을 소소하게 만들어나가는 뉴요커들의 모습에 감동하고 감사한다. 불과 두세 달 사이에 모든 것이 바뀐 도시. 작가는 그 한복판에 살며 묻는다. 이 거대한 변화 속에서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그에게 이 질문은 인생에서 가장 박진감 넘치고 충만한 하나의 예술적 도전이었고, 미국 현지와 동시에 출간하는 한국어판에서는 그 과정이 지닌 의미와 함께 특별히 한국 독자들에 대한 따스한 인사를 전했다.
별빛이 꺼진 하늘 같은 맨해튼의 거리
빌 헤이스가 포착한 순간들에는 묘한 희망이 깃들어 있다
뉴욕에서의 생활을 담은 사진집을 출간하며 맨해튼의 갤러리에서 전시를 여는 등 사진가로도 활동해온 작가는 이번에도 팬데믹이 덮치자마자 거리로 나왔다. “별빛을 꺼버린 하늘” 같은 맨해튼의 거리,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러시아워의 지하철, 팬데믹이 시작될 무렵 이미 병원을 휩쓸고 간 코로나에 걸렸던 뉴욕대학병원의 의사들, 한순간에 동료를 잃은 야외관리업체 직원의 모습 등을 담았다. 그러나 스산한 흑백 풍경 속 사람들에게서는 우울만이 아니라 굳은 의지와 희망도 엿볼 수 있다. 한 푼도 받지 않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누구든 마스크를 나누어 주는 작은 약국의 약사, 위급 상황에 대비해 뉴욕으로 건너와 강변에서 개인 훈련하는 미국육군사관학교의 위생병들, 이 와중에도 공원 풀밭에 홀로 앉아 꽃잎과 잔가지로 만다라를 만들고 저 너머의 세계와 소통하려는 사람, 그리고 품에 소독제와 장갑을 지닌 채 거리에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앉은 노숙인이 건네는 인사, “평화와 할렐루야.”
작가의 시선은 대학병원 의사부터, 군인, 환경미화원, 노숙인까지 다양한 계층을 아우른다. 세심한 인터뷰어로서 사람들이 각자 처한 상황을 듣고, 저마다의 고통 속에서도 도시의 이웃을 위해 자기 일을 해나가는 모습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솔직하고 담백하게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감사는 엄중한 상황에서 ‘뉴욕적인 것’이란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한다. 이 뉴욕적인 순간들, 작가는 현재를 기록하는 페이지 사이사이에 뭇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팬데믹 이전의 아름다웠던 시간들도 불러낸다. 허드슨 강변의 여유로운 연인들과 골목마다 거리마다 모여든 사람들의 행렬과 축제 같은 과거의 시간들은 현재의 모습과 번갈아 배치된다. 이러한 병치는 우리를 둘러싼 것들이 얼마나 빠르게 변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삶의 이런 다양한 모습들을 얼마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는지 극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연인이자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했던 올리버 색스와의 추억들과 그가 생전에 남긴 삶에 대한 통찰들은 팬데믹의 무기력한 우울을 극복하는 데 힘이 되어준다.
지금 뉴욕이 지나고 있는 희망의 연대 속으로
“나는 이 거리의 증인이 되고자 길을 나선다”
존엄한 죽음을 기대할 수 없는 이 시간, 뉴욕에서는 저소득 노동자들이 몰려 있는 구역에서 특히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찾아가는 이가 없는 시신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인근의 섬에 집단 매장되고 있다. 상황을 회피하는 대통령의 태도를 두고 작가는 “죽음은 감추기 어렵다”고 일갈하며, 코로나로 숨진 이들이 급격히 늘기 시작한 날로부터 두 달여 동안의 사망자 통계를 늘어놓는다. 게다가 2020년 봄 미국은 팬데믹이 절정인 상황에서 격렬한 진통을 예고하는 또 다른 문제를 맞닥뜨린다. 경찰의 폭력에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이후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난 것. 9/11 사태 때도 버틴 사람들이 이번에는 ‘뉴욕 탈출’ 운동까지 벌이는 지금, 어떤 이들은 뉴욕에 남아 코로나의 슬픔에 빠져들 새도 없이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연대로 거리를 메우고 있다.
팬데믹부터 대규모 인종차별 반대 운동까지, 뉴욕은 지금 거대한 변화의 한복판에 있다. 코로나 시대 풍경을 담으려 거리로 나왔던 작가는 이제 웅장하게 한 목소리로 외치는 시위대의 함성 소리를 따라 다시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선다. 늦은 오후, 통금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의 시작과 함께 사랑에 빠지게 된 연인에게 눈물 가득 고인 눈으로 한 통의 문자를 보낸다. “넌 나한테 소중한 존재야-이걸 잊지 마.” 그리고 지금 뉴욕이 지나고 있는 희망의 연대 속으로 그는 다시 걸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