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말하지 못해 부재중 통화가 되어 버린 이야기, 당신에게도 있나요? 이제 누군가는 들어 주었으면 하는 당신의 ‘하지 못한 말’을 남겨 주세요. 당신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그 어떤 말도 좋습니다.”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는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열린 동명의 관객 참여형 전시를 엮은 책입니다. 전시장에 설치된 공중전화 부스에 차마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남기면, 부스 밖 전화기에 전달되어 우연히 수화기를 든 누군가에게 랜덤하게 전달되는 형식이지요. 3년간 ‘부재중 통화’라는 이름으로 약 10만 통의 목소리가 남겨졌고, 책에는 우리 삶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여주는 450개의 부재중 통화가 담겼습니다.
- 엄마, 엄마 딸 여자친구 있어. 이렇게라도 말하고 싶었어. 사랑해. (74,838번째 통화)
- 윤아. 작년 겨울에 네가 죽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때 술도 많이 마시기도 했지만 내가 같이 죽자고 했던 거 진심이었어. 그 뒤로 너를 못 봤는데, 불행하더라도 네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진심이야. (60,012번째 통화)
- 아무도 해주지 않은 말이었지만,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기에 여기에 남깁니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 누군가가 당신 옆에 있다는 걸 알아주세요. (28,638번째 통화)
전시 첫날, 작업실로 돌아가 부재중 통화 384통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설은아 작가는 깜짝 놀랐대요. 엄마를 부르고 울기만 하는 사람, 성 정체성을 숨기며 살아야 했던 성소수자, 거식증을 앓고 있는 대학생… 다들 전시장에서 재미있게 놀다 간 것 같은데, 자신이 오늘 그 현장에 있어서 다 아는데, 아까 그 평범한 사람들 속에 이런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서요.
돌이켜보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건 사람이나 상황 그 자체보다도, 남들은 다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만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은 외롭고 초라한 마음인 것 같아요.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는 평온해 보이는 사람들의 삶의 이면을 들여다봅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우린 모두 크고 작은 갈등과 상처, 불안에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4월 28일부터 30일까지, 3일 동안 서로가 서로의 수신인이 되어 주는 사적인 전시회가 준비했습니다. 어떤 비난이나 충고 없이 누군가의 내밀한 이야기를 듣고, 나를 짓누르던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는 시간. 우리 삶과 닮아 있고 닿아 있는 10만 통의 부재중 통화가 담긴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를 비롯해 한 시절 곁에 있어 준 사람들에게 띄우는 김달님 작가의 다정한 편지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 아픔과 불안과 슬픔 가운데서도 삶의 작고 희귀한 것들을 살피는 성동혁 시인의 산문집 <뉘앙스> 등 마음을 보듬는 수오서재의 에세이들을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너무 막막해서, 외로워서, 힘들어서 혼자 감당하기 힘든 날, 세상의 끝과 연결된 이곳에서 누군가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당신의 슬픔을 꺼내 놓으며 홀가분해지기를. 사적인서점에서 기다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