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하진 않지만 자주 타닥거리는
정전기형 인간,
여간해서 흥이 나지 않는 날도
눈 질끈 감고 풍덩 뛰어들어본 이야기.
“나는 자주 나가고 싶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고층 빌딩 안에서 키보드를 치며 살고 있지만 동경하는 세계는 언제나 밖에 있었다. 한낮을 활보하는 사람들, 근육을 쓰고 땀을 흘리는 사람들, 깊이를 모르는 물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 밖을 베이스캠프로 둔 사람들이 하는 경험이 진짜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몸을 움직여 체득한 지식이야말로 지혜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 서문 중에서
누군가 “슬슬 나갈까?” 하면 “잠깐만 있다가”라고 말하는 사람 옆에 ‘이미 일어서 있는’ 사람이 있다. 저자 노윤주다. 그는 나가는 것도 좋아하지만 당장 나가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렇다고 엄청난 추진력을 가졌는가 하면 뒷심이 부족해 화력보다 미진한 정전기력 정도를 지녔다고 말한다. 주말에 누워만 있기는 아까워서, 갑자기 처음 해보는 일을 하고 싶어서, 1인 가구의 가장으로서 내가 나와 잘 노는 것이 중요해서 자주 타닥거리며 밖에 나가볼 뿐이라고. 건물 밖으로, 경로 밖으로, 직업 밖으로, 시선 밖으로, 두려움 밖으로 나가 돌아다니다 주머니가 불룩해지면 집에 돌아온다. 한번 저질러보는 동안 몸으로 배운 것을 거친 호흡이 가라앉기 전에 촘촘히 기록했다. 그렇게 바깥을 구르고 노닐며 발견한 이야기에는 온기와 활기가 감돈다.
“어떤 날들의 발견은, 어떻게 살고 싶다는 각오가 되었다.”
- 서문 중에서
내가 아는 세계의 바깥으로
딱 한 발만 멀리.
나와 잘 노는 나의 뒤에
그래서 잘 살게 된 내가 있으니까.
생동감도 옮는 것인지, 노윤주의 글을 읽다 보면 리드미컬한 문장을 따라 어디라도 유쾌한 곳에 당도할 것만 같다. 바깥에서 그는 미지의 영역으로 달려가고 싶어 찾아간 복싱장에서 달려드는 누나가 되었다가(49쪽), 동네 수영장에서 발차기를 잘하는 선생님으로 불려 얼굴이 시뻘개질 때까지 발차기를 멈추지 않기도(못하기도) 하고(184쪽), 글로벌기업(에어비앤비)에서 알아봐준 덕분에 서촌으로 손님들을 모셔 인생 첫눈과 첫술을 함께하기도 한다(73쪽). 단풍에 흥이 나지 않는 마음이라도 꽃이라면 달래질 것 같던 날에는 꽃꽂이를 배우러 갔다가 술집에서 여는 영화제 기획자가 되고(33쪽), 회사의 지원금으로 타히티 서핑여행을 가려다 양양 앞바다에서 만난 서핑 잘하는 개와 함께 TV 출연도 하고야 만다(239쪽).
한번도 안 해본 일을 일단 저지르는 쾌감에 뒤따르는 것은 사람 사이에 정전기처럼 일어난 작은 웃음이다. 유람선이 보이는 목욕탕에서 바닷가 여자들이 나눠 먹던 김밥에 침흘리던 순간, 같이 여행한 친구가 헤어지는 길에 쥐여준 편지를 펼치던 순간, 공동 거주 실험을 한다며 한 집에 모여 취한 밤에 우르르 눈을 맞으러 나가던 순간 들에 배어나는 미소와 웃음소리 같은 것. 아주 오래전에 듣고 한동안 들어본 적 없는, “00아 노올자”는 말이 귀에 들리는 듯도 하다.
핫플레이스 대신 사람에게 잘 다녀오는 따스함을 지닌 이 글이 웅크리고 있던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설령 누군가 밖에 나가자고 하면 “잠깐만 있다가”라고 말하는 쪽이더라도 마음만은 제주 오름에 오른 것처럼 활짝 펼쳐지는 글이므로, 오늘은 안 해본 일을 해보겠다는 결심이 설 것이다. 그것이 내가 나에게 주는 용기라는 생각도 든다면 그렇게 바깥으로 나간 우리에게도 모험이, 어쩌면 절로 춰지는 댄스가 찾아올 것이다. 그러고 나서야 우리는 ‘나와 잘 노는 나’, 그래서 ‘잘 살게 된 나’를 만난다. 다시 찾아올 단풍에도 흥이 나지 않는 날이 오면, 멸치의 고장 통영에 가서 앤초비 호텔 간판을 보고 짭조름한 앤초비의 맛을 떠올리며 웃고 싶다. 그리고 솔직히… 쉴 새 없이 타닥거리고 있을 저자가 다음 주말엔 뭐 하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