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라디오에 게스트로 출연했습니다. 청취자 사연에 맞춤 책을 골라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지요.
사연자는 29살 직장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학비와 용돈을 벌어야 했다고, 직장인이 되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희망을 품고 살았는데,
취업을 하고 나서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고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족이 아파 입원하고, 사기를 당하고….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인데, 평범한 행복을 누리는 게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언제쯤이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사연자를 위해 제가 고른 책은 <혼자를 기르는 법>입니다.
‘훌륭한 분-이시다’ ‘귀한 몸-이시다’에서 따와 지은 귀한 이름을 갖고 있지만,
실상은 작은 인테리어 회사의 ‘시다바리’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매일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20대 사회초년생 ‘이시다’의 일상을 만화로 담아낸 책이지요.
시다는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고향에서 도망치듯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처음 짐을 푼 곳은 고시원의 관 같은 방이었고, 지금은 원룸에서 햄스터 윤발이와 살고 있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보통의 삶을 유지하기도 벅찬 상황이지만 시다는 믿습니다.
좋은 일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지금으로선 전혀 알 수 없는 어떤 좋은 것들이, 분명 어디에선가 숨어 있다가 자신을 놀라게 해줄 거라고요.
‘숨어 있는 것’이라는 제목의 에피소드에서 시다는 깜짝 생일 파티로 자신을 놀라게 해주려고 준비하는 친구들을 상상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집 문을 엽니다
현실은 쓸쓸한 어둠만이 자신을 맞아줄 뿐이지만요.
조금은 실망한 기색으로, 그렇지만 완전히 체념하지 않은 시다의 모습 위로 독백이 이어집니다.
“그건 오늘. 오늘이 아니라면 내일…그것도 아니라면 내년에라도. 언젠가 갑자기 나타나 저를 맞아주겠죠.
전 그저 하루하루를 열어보는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242~243쪽)
<혼자를 기르는 법>은 ‘괜찮아, 다 잘될 거야’ 하고 대책 없이 위로하지도, ‘사는 게 원래 다 그런 거지’ 하고 냉소하지도 않습니다.
팍팍한 현실에서도 ‘내가 나로 사는 방법’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바라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시다의 하루하루를 보여줄 뿐입니다.
녹음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사연자에게 보낼 책을 포장하고 편지를 썼습니다.
방송에서 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제 몫은 다한 셈이지만, ‘숨어 있는 것’을 기다리는 시다를 떠올리며 깜짝 선물을 준비하고 싶었습니다.
저 역시 시다의 말을 믿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어가다 보면,
오늘이 아니면 내일, 내일이 아니라면 내년에라도,
언젠가 반드시 당신을 놀라게 해줄 좋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요.
그때까지 너무 지치기 않기를 바라며, 당신의 매일을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 책처방사 정지혜 드림